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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02-03 00:06
조회
100

1. 일본군 '위안부'란?

일본군 '위안부'는 1932년 일어난 제 1차 상하이 사변 이후부터 1945년 일본이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하기 직전까지 일제에 의해 납치나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민간업자의 꾀임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 "자신을 따라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와 같은 말)에 속아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 있던 일본군 부대 내 '위안소', 혹은 민간업자가 운영하던 '위안소'에서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 역할을 하셔야 했던 여성들이다. 당시 식민지 한국 여성들부터 타이완, 중국,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지의 현지 여성, 심지어는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던 유럽 여성들까지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일본 학자 요시미 요시아키에 따르면 동원된 '위안부' 수는 약 8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조선인 여성 비율이 절반이 넘었을 것이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대우를 받으셨고, 현재까지도 할머니들의 아픔과 상처는 아물어지지 않고 있다.





2. 적절한 용어

'위안부’라는 용어는 성노예를 지칭하는 말이며 일본에서 만들어 낸 표현이다. 따라서 해당 용어는 사용하되 그 단어의 뜻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작은따옴표를 붙여 사용하는 것이 옳다.

ex)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O) /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X)

또한, ‘정신대’라는 표현은 ‘여자 정신대 근로령'에서 나온 말로 강제 노동을 하셨던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고,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는 자발적으로 군에 소속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한편 외국이나 국제 기구 등에서는 일본군 성 노예 (Military Sexual Slaves by Japan)이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3.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성격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 문제, 식민 범죄, 전쟁 범죄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한국 여성들뿐 아니라 중국, 타이완, 동남아 등지의 여성들까지 ‘위안부’로 동원된 것을 보아 단순히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이다. 더 나아가서는 지금도 전시 폭력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 유럽인 피해자 할머니들도 계시므로 전 세계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4. 한-일간 2015 합의의 문제점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양국 간에 '위안부' 합의가 체결된지 3년이 넘는 긴 시간이 지났다. 이 합의는 박근혜 정권 당시 피해자 (생존자) 분들의 의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양국 정상이 마음대로 체결해 버린 졸속 합의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위안부' TF 조사가 진행되었고, 2018년 01월 0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는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지만,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라는 후속 조치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역사 교과서 기록 등 수요시위에서 26년간 요구해 온 점들을 일본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합의가 타결되었던 날 오후에 윤병세 당시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합의 내용이다. 합의 내용의 문제점을 한 가지씩 제기해 보겠다.

<합의 내용>

한-일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를 해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한국 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1)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 정부가 상기 1. 2)에서 표명한 조치 (재단 설립 및 일본 정부의 지원금 출연)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함.

- 문제점: 사실 제대로 된 합의였다면 '불가역적 사죄'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즉, 일본 정부가 '사죄'하는 입장을 확고히 하기로 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이 합의 내용에 들어가 있다. 심지어 2017년 12월 27일 발표된 외교부 TF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문구는 합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먼저 요구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2)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 문제점: '평화의 소녀상'은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정대협)을 비롯한 민간 단체들이 건립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평화의 소녀상'을 이전하거나 철거하려 한 것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 앞에 바로 서지 못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외교부 TF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 합의에서는 해외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도 철거하도록 노력하기로 했으며 이 사실을 숨겨 왔다고 하니 정말 충격과 경악을 금할 수 없다.

3) 한국 정부는 이번에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

- 문제점: 국제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로 한 것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가 잊혀지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판단된다.

양국 간 합의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은 '피해자 중심의 합의'가 아니라 '정부 간의 졸속 합의'였다는 점이다. 즉, 피해자 할머님들은 따로 계신데 한일 양국 정상이 본인들 마음대로 합의를 한 것이다.

5. '위안부' 문제 관련 운동사

1)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

매주 수요일마다 열려 흔히 수요시위 혹은 수요집회라고 불리는 이 시위의 정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이다. 정의기억연대 (정의연)과 다른 단체들이 옛 주한 일본 대사관 건물 앞에서 공동으로 열고 있다.

물론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는 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시위를 대체한 적이 두 번 있지만, 1992년 1월에 시작된 이 시위는 매주 수요일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26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2002년 3월 500회를 맞은 이 집회는 단일 주제로 개최된 집회 중에서는 세계 최장 기간 집회 기록을 갱신했고, 이 기록은 현재도 매주 갱신되고 있다.

2011년 12월 14일에 이 시위는 1000번째를 맞게 되었고, 1000차 정기수요시위가 열린 날 아침에 시위 개최 장소 (당시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는 우리에게 '소녀상'으로 알려진 '평화비'가 설치되기도 했다.

* 수요시위 동참하기: 매주 수요일 낮 12시 ~ 13시, 서울 종로구 평화로 옛 주한 일본 대사관 앞

2) 피해자 할머님들의 증언 활동

국내 최초의 '위안부' 피해 증언은 1991년 8월 14일에 김학순 할머님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매년 8월 14일이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된 것이다. 그 이후로 많은 피해자 (생존자) 분들께서 증언을 하셨다.

또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께서 해외에서 증언을 하신 경우도 꽤 있다. 2007년 2월 이용수 할머니와 김군자 할머니,그리고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께서 미국 워싱턴 의회에서 증언하셨고,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던 이야기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두 할머님께서는 한국어로 증언하셨지만, 스토리 전개를 위해 영화 속에서는 영어로 증언하시는 것으로 나오기도 하였다.

7. 자료 정보

  • 자료 작성자: 배규동 (단장)
  • 사진 출처: 정의기억연대 (http://womenandwar.net)
  • 인용 자료: 한국어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
  • 자료 최종 수정일: 2019/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