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에서 안중근을 만나다

배규동님은 대련에 있는 뤼순 감옥과 관동 지방 법원 등을 방문했습니다. 뤼순 감옥과 관동지방 법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우역바에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중국 랴오둥 반도의 남단부에 위치한 중국의 도시 대련 뤼순커우 구에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지사가 수감되었던 뤼순 감옥과 그들이 재판 받았던 관동 지방 법원이 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에서 초대 통감이자 일제의 한국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습니다. 그는 러시아어로 ‘한국 만세’를 외치며 체포되었고, 대련에 있는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뤼순 감옥은 러시아가 대련을 점령한 후에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러일전쟁 후 일본이 대련을 점령하게 되면서 일본이 관리하게 되었고, 1907년에 규모가 확장되었습니다. 아래층 감옥 건물은 러시아가 지었고, 위층 붉은 색 건물은 일본이 중축한 것입니다.
뤼순 감옥 수감자들은 비좁은 감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했으며, 하루 중 긴 시간을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식사량도 차등 분배 받았습니다. 태형과 같이 잔인한 고문도 이뤄졌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으로 압송된 뒤 간수부장 당직실의 옆에 있는 이곳에 단독으로 수감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구금되었던 감방 안에는 1910년 3월 26일에 사형당하기 전까지 자신의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을 저술했던 책상이 있습니다.

안 의사는 뤼순 감옥 근처에 있는 관동 지방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여러 항일 지사들이  재판을 받았던 이 곳은 현재 민간에 의해 전시관으로 꾸며졌습니다. 이곳이 안 의사가 재판을 받은 곳입니다. 안 의사는 이곳에서 재판의 불공정함을 비판하였으며,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조차 평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은 뤼순 감옥의 사형장입니다. 사형 방식은 교수형이었으며, 사형수가 완전히 사망하면 밑의 나무 통에 시체를 구겨 넣어 처리했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 사형장이 생기기 전에 순국하셨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사형 집행이 이뤄졌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안중근 의사의 유언 –

다음은 만충묘 전시관의 마지막 섹션에 나와 있는 글입니다. “절대 잊지 말자. 어두운 역사의 본보기는 지나간 전쟁에 대한 기억의 장소일 뿐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도록 인도해 주는 빛나는 등대이다.” 우리도 그 말처럼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독립 운동가들을 비롯하여 희생되신 많은 분들을 절대로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